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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스터 롱텀 1편] 다시, 나만의 스포츠카를 갖게 되다

여러분이 정의하는 스포츠카란 무엇인가요? 아마 대개는 “400마력이 넘어야 한다”거나 “제로백이 4초 대여야 한다” 또는 “문이 두 개여야 한다”는 식으로 답할 겁니다. 저는 그 어떤 의견도 존중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나올 소중한 의견도 존중해 주세요. 저는 스포츠카의 정의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1) 운전자로 하여금 가슴 떨림을 자아내고 2) 운전이 즐거우면 된다. 1)과 2)를 동시에 충족한다면 그건 좋은 스포츠카인 거다.

이런 기준 하에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뿐만 아니라 200마력의 토요타 86도 스포츠카이고, 평범한 소형차를 바탕으로 만든 골프 GTI도 스포츠카입니다. 아울러 (논란을 낳겠지만) 현대 벨로스터도 스포츠카라고 생각합니다. 은근한 설렘을 유발하고 운전이 상당히 재미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벨로스터는 N 모델이 아니라 노말형입니다. N의 그늘에 가려 있을 뿐 1.6 터보 모델도 상당히 좋은 차예요. 최고속도 230km/h 이상, 0→100km/h 가속 6초 대의 준족입니다. 수치가 중요하지 않다더니 수치를 논하고 있네. 아무튼 저는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포츠카를 사기로 했습니다. 비싸거나 400마력이 안 넘어도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자동차.

사실 지금까지 말한 건 ‘정신승리’에 가깝고요. 그냥 조건이 좋아서 샀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싸서 샀습니다. 현대가 벨로스터 라인업을 2.0 터보의 N만 남겨두기로 했고, 그에 따라 내수에서 단산될 1.6 터보의 할인이 컸거든요. 벨로스터 N DCT의 약 60% 가격에 살 수 있었으니 ‘어머 이건 사야 해’ 싶었습니다. 딜러 전산 상 할인차는 대부분 무광 그레이(슈팅스타)와 레드(이그나이트 플레임)가 남아 있었는데요. 누구보다 빠른 결정으로써 딱 한 대 있던 레이크 실버 컬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온 나의 슈퍼 벨로스터. 캐리어에 타 있는 모습에서부터 설레는 걸 보면 분명 스포츠카가 맞습니다. 과장 안 보태고, 정말 AMG GT를 샀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듭니다. 남자는 철 들면 죽는다던데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한동안 스포츠카 없이 살다 이런 차를 손에 넣으니 기쁨이 더욱 배가됩니다. 소형차로부터 이런 큰 행복을 느끼게 될 줄이야!

저의 슈퍼스포츠카(=벨로스터를 지칭하는 말)는 소중하므로 출고 직후부터 옥탄가 100짜리 고급유를 넣어 주었습니다. 뒤에서 포르쉐 992가 주유 순서를 기다리고 있군요.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내 벨로스터는 GT3처럼 머플러가 가운데에 모여 있는데 그 992는 양쪽으로 나 있어서(PSE) 제 차가 더 좋은 차입니다. 그리고 제 차에는 HUD까지 달려 있습니다. 에, 또 뭐가 있지. 아무튼 나만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날이 무척 더워서 눈알에도 땀이 나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고급유를 넣어서 그런지 연비가 매우 좋습니다. 지금까지 1,000km 탔는데 누적 연비 14km/L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차들 중에서 가장 스포티한 성격의 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기름 적게 먹습니다. 이 연유에서 이 차를 출퇴근용으로 쓰기로 합니다. 혹자는 하체가 단단하지 않냐지만 그 운동성은 86과 매우 흡사합니다. 롤이 거의 없이 통통거리는 발랄한 모습에서 86과 미니를 뒤섞은 향기가 느껴집니다. 저는 86과 미니를 각각 두 대씩 탔으므로 이게 ‘오바’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하체입니다. 하체 느낌이 예전 투스카니 ‘엘리박’과 비슷합니다. 엘리사 전용 작스(SACHS) 댐퍼에 아이박 스프링을 조합한 그 느낌 말이죠. 1,300kg의 엄청난 경량 자동차이기에 현가상질량이 작아 운동성이 좋은 듯합니다. 참고로 1,300kg은 86 AT(1,280kg)와 비교할 만한 수치입니다. 벨로스터 N DCT(1,460kg)보다는 무려 11% 경량화 된 겁니다. 정말이지 벨로스터 1.6T는 움직임이 몹시, 매우, 아주 경쾌합니다. 새 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바로 ‘경량’입니다.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배기음. 저는 가상 사운드를 모두 끄고 다니는데요. 그럼에도 은은하게 들리는 배기음이 설렘을 자아냅니다. 국내 자료에는 안 나오지만 토크벡터링도 있습니다. 폭스바겐 XDS처럼 브레이크를 바탕으로 선회 시 좌우 바퀴 구동력을 제어합니다. 탈출 가속에서 기계식 LSD보다는 손해를 보지만(제동 기반이므로) 일단 움직임 자체는 LSD 박힌 차처럼 산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트포지션이 N보다 낮다는 점, 7속 DCT가 코나와 아반떼 스포츠 것보다 성숙하다는 점, 기어비가 상당히 가속형이라는 점(7단 100km/h에서 약 2,100rpm), LED 헤드램프와 통풍 시트 같은 좋은 장비를 만재하고 있다는 점이 만족도를 높입니다. 예전에는 짝짝이인 보디 형태가 참 싫었었는데 막상 내 차가 되고 나니 그런 이채로움도 재미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의 신차를 9대째 샀는데 무결했던 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항상 문제들이 있었지요. 이번 벨로스터 역시 천장 도장이 매우 불량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햇빛에 노출된 구닥다리 차처럼 블랙 루프가 하얗게 변했더라고요. 이물질도 들어 있고. 결국 천장은 광택을 내기로 했습니다. 새 차를 샀는데 내 돈을 주고 광을 내야 하다니. 항상 말하는 역한 신차 냄새도 문제입니다. 현대차 정도 규모라면 '후각 마케팅'을 할 때 된 거 아닙니까. 현대 특유의 마른 오징어 냄새는 대충 6개월쯤 지나야 빠집니다.

N에 너무 힘을 준 까닭인지 실제 퍼포먼스 대비 힘 없어 보이는 익스테리어도 아쉽습니다. 그래서 미리 주문해두었던 N의 스포일러와 사이드 스커트를 달아 주었습니다. 플라스틱 도어 스커프도 N의 메탈 스커프로 바꿔버렸죠. 출고한 지 3시간 만에!

오랜만(이라기엔 반 년 만이지만)에 스포티한 차를 갖게 되니 너무 기쁩니다. 벨로스터는 2,000만원 정도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차입니다. 그 동안 제가 아꼈던 스포츠카들은 1억 원을 넘기기도 했었는데 벨로스터는 그 녀석들 값의 20%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값이 20%라고 해서 재미까지 20%인 건 아닙니다. 경량이 주는 즐거움, 좋은 연비, 연 30만 원도 안 되는 자동차세 때문에 대략 80%의 만족을 선사합니다. 다른 마니아들에게까지 인정 받고 싶다면 역시 BMW M을 사야 하지만, 내가 만족할 수만 있다면 현대도 좋은 것 같습니다.

벨로스터 전도사가 된 저 때문에 큐피디도 이미 같은 차를 한 대 뽑았습니다. <엔카티비>에서 큐피디의 벨로스터 출고기를 본 구독자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엔카 직원들이 모두 미쳐가고 있다’고. 자 그럼 이제 곤잘로에게 묻겠습니다. “쟐로야, 넌 안 미칠 거야?”

(2편에 계속)

정상현

정상현 편집장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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