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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일본에서 '과속단속'에 걸리다

지난 9월, 일본 규슈 지방으로 출장 다녀왔습니다. 이동 수단은 십자수처럼 촘촘히 짜인 대중교통 대신 자유로운 렌터카로 정했습니다. 모델은 마쓰다 데미오가 낙점. 마쓰다는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되지 않으니 가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본기 좋다는 데미오의 진짜 실력이 궁금했습니다. 이런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으면 출장이 일처럼 다가오지 않을 수 있기도 하지요.

일본의 BMW로 통하는 마쓰다

하지만 타임즈 렌터카는 데미오 대신 대우전자 냉장고처럼 생긴 스즈키를 내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건 데미오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렌터카 회사 직원은 데미오의 동급 모델임을 강조하며 ‘얼른 타고 사라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런 건 너나 타라’는 얼굴로 응수했지만 쓸모 없었습니다. 이윽고 슈렉 고양이 표정으로 태세를 바꾼 뒤 “그럼 다른 동급 모델은 없냐”고 물었지만 렌터카 직원은 자동응답로봇처럼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저는 그가 모를 만한 언어로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XXX”.

자연 속에 냉장고가 녹아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업무를 대충 마치고 나니 딱 하루 동안의 여유가 남았습니다. 혼자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 ‘아소산’에 가기로 합니다. 그곳에 가면 뉴질랜드 부럽지 않은 초록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체류했던 북규슈에서 아소산까지는 약 150km 거리. 이 경로에는 적절한 고속도로가 없어서 국도를 타야 합니다. 사실 일본 국도는 풍경이 워낙 좋아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정이 ‘스즈키 솔리오’와 함께라는 게 짜증 났죠.

아소산은 쉬지 않고 운전해도 4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장거리를 대비해 먹을 것을 잔뜩 샀습니다. 원래 운전하면서 음식 절대 안 먹는다는 룰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스즈키를 운전하므로 특별히 룰을 깨기로 합니다. 차에서 먹는 과자가 더 맛있다는 것, 솔리오 덕에 알게 되었습니다.

조수석에서 찍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요

출발 시각은 정오였습니다. 아소산에 도착하면 16시가 된다는 계산. 18시면 일몰이라 소요 시간을 3시간 반으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중간 중간 적절히 밟으면 될 거였죠. 참고로 저는 운전을 시작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과속 딱지를 뗀 적이 없습니다. 과속을 전혀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한 번도 안 걸렸습니다. 그만큼 법규를 준수하는 편입니다.

딜러정이 극혐하는 직물 시트 탑재

망할 스즈키 솔리오는 1.25L 가솔린 엔진으로 91마력을 냅니다. 제가 한국에서 타는 BMW M2 힘의 4분의 1 밖에 안 됩니다. “밟아 봤자 느리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심지어 무단변속기를 달아 엔진과 바퀴를 헤어밴드로 연결한 것처럼 굴러갑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냉장고를 어떻게 타고 다니는 걸까요. 혹시 그들 몸은 바나나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런데 바나나는 냉장할 필요 없다던데.

이게 달려 봤자 얼마나 달린다고

일본 국도는 신호도 많고 제한 속도도 느립니다. 은근히 차들도 많이 다니죠.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점점 답답해졌습니다. 바로 그때, 길쭉한 터널이 하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91마력을 모조리 탄소화합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터널 안쪽까지 시야를 멀리 두니 차도 딱 한 대 보이더군요. 가속 페달을 밟고 일어설 기세로 달렸습니다. 한참 있으니 속도계가 120km/h를 표현합니다. 이때 무의식적으로 룸미러를 봤습니다. 파랑과 빨간 불빛이 서로 짝짜꿍하고 있더군요. 여의도 불꽃놀이보다 찬란한 그 불빛들.

천장에서 경광등이 튀어나오는 머신

네, 경찰차였습니다. 암행 순찰차. 터널에 딱 한 대 있던 그 차가 하필이면 암행 순찰차였던 것입니다. 까만(알고 보니 다크블루) 크라운의 천장에서 숨어 있던 경광등이 튀어나왔습니다. 동시에 그 차의 확성기에서 알 수 없는 일본어가 마구 들려왔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그 차가 ‘제게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터널에서 빠져 나와 차를 세웠습니다. 렌터카 직원에게 했던 것과 달리 꿈꾸는 아기 천사 얼굴을 한 채 창문을 내립니다. 경관께서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짧은 영어로 “난 일본어 할 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당황하더군요. 알다시피 일본인들은 영어 ‘울렁증’이 있잖아요. 이대로라면 살아 남겠다 싶었습니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교통 단속에 걸리면 거의 봐준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까지 났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경찰차 앞을 막고 암행 순찰차와 기념사진

하지만 다른 경관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고, 영어를 제법 할 줄 알았습니다.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길래 국제 면허를 드렸습니다. 이게 전부냐고 하길래 전부라고 했습니다. 물론 국내 면허증도 갖고 있었지만. 이윽고 그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자기네 경찰서까지 함께 가줄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얼마 걸리냐고 했더니 10분 거리라네요. 9분이나 11분 거리면 안 따라간다고 농담했습니다. 안 웃더군요. 농담이 웃겨야 농담인데, 실패한 겁니다. 저는 그렇게 외국까지 와서 경찰서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찰서는 한국과 달리 산 속에 있었습니다. 마치 요새처럼요. 경찰서 주변 풍광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었습니다. 모터사이클이 참 많았고 경찰차도 몇 대 보였습니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니 저를 위한 정성스런 딱지를 만들어 왔더군요. 딱지의 핵심은 스즈키가 시속 60km 제한에서 88km/h로 달렸고(사실 120km/h였는데), 그에 따른 벌금은 1만8,000엔(약 18만 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스즈키를 운전한 사람이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관은 제게 속도 위반 사유를 물었습니다. 아니, 과속에 이유가 있나요? 그냥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런 거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왠지 ‘괘씸죄’ 같은 게 붙을 것 같았습니다. 음, 원래 사람 상대할 때 제일 편한 방법은 멍청한 척하는 겁니다. 이에 따라 저는 잠시 동안 제 지능을 낮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내가 빌린 망할 스즈키는 속도계가 대시보드 가운데에 달려 있다. 속도계는 운전대 안쪽에 있어야 하는 거다. 스즈키는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의 과속은 스즈키 잘못이다”.

다행히 경관이 웃었습니다. 그의 자동차는 닛산 쥬크였기 때문이죠. 그의 웃음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혹시 나랑 기념사진 찍겠냐"고 물었더니 다시금 정색했습니다. 농담은 1절만 해야 한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벌금은 경찰서에서 2km 떨어진 은행에서 즉시 납부했습니다. 난생 처음 걸린 과속 단속이 일본에서, 그것도 18만 원짜리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금전적 손해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소산을 결국 못 갔거든요. 경찰서와 은행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지요. 하지만 아소산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오래갈 만한 추억을 만들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잠시 쌓인 스트레스는 아소산 가는 길의 도스 시 아울렛에서 ‘폭풍쇼핑’으로 풀었습니다.

지금 보니 차 넘버가 4(X100)

이제 결론입니다. 여러분, 일본에서 과속 걸리면 무조건적으로 봐주지 않더라고요. 저처럼 제대로 단속 당한다면 큰 돈 나간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때는 그 날의 여행 일정도 다 틀어지게 된다는 것도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렌터카로 스즈키가 나온다면 곧바로 한국에 돌아오는 편이 낫습니다. 아니면 마쓰다가 나올 때까지 렌터카 직원과 실랑이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즈키에게 충고합니다. "당신들은 지금부터 운전대 안쪽에 속도계 다는 설계 방법을 하루 빨리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정상현

정상현 기자

jsh@encarmagazine.com

미치광이 카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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